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 (문단 편집) == 개요 == ||<-2> '''{{{#white '''{{{+1 베트남 전쟁 관련 사진자료}}}'''}}}''' || || [[파일:NUiOhsE.jpg|width=100%]] || [[파일:external/i2.cdn.turner.com/150417130311-10-vietnam-war-timeline-restricted-exlarge-169.jpg|width=100%]] || || {{{#white [[베트콩|{{{#fff 베트콩}}}]] 대원을 발로 차는 [[베트남 공화국군|{{{#fff 남베트남군}}}]]. 손에는 [[M1918 브라우닝|{{{#fff BAR}}}]]을 들고 있다.}}} || {{{#white 베트콩 게릴라 수색 대원과 [[미합중국 육군|{{{#fff 미 육군}}}]] [[UH-1|{{{#fff UH-1}}}]] [[헬리콥터|{{{#fff 헬리콥터}}}]]}}} || || [[파일:external/vvkr.cdn2.cafe24.com/usarmy07.jpg|width=100%]] || [[파일:external/www.english-online.at/vietnam-war-protest.jpg|width=100%]] || || {{{#white 주월 한국군 사령관 육군}}} [[소장(계급)|{{{#fff 소장}}}]] [[채명신|{{{#fff 채명신}}}]]{{{#fff 과 월남 군사 원조 사령관}}}[* 주월미군의 최고 선임자다.] [[미합중국 육군|{{{#fff 미 육군}}}]][[대장(계급)|{{{#fff 대장}}}]]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fff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 {{{#white [[미국|{{{#fff 미국}}}]]에서 일어난 베트남 전쟁 반전 시위}}} || || [[파일:external/vvkr.cdn2.cafe24.com/usarmy06.jpg|width=100%]] || [[파일:남베트남 최후의 날.jpg|width=100%]] || || {{{#white 베트남에 파병된}}} [[대한민국 육군|{{{#fff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fff 제9보병사단}}}]]{{{#fff 의}}} [[M113|{{{#fff M113}}}]] || {{{#white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사진[* 북베트남 육군 소속 [[59식 전차]]가 남베트남 대통령 궁 정문을 부수고 돌입하는 모습이다.]}}} || [[1955년]]~[[1975년]]까지[*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한 시점까지만 치면 [[1973년]]까지다. 아직까지 전쟁의 시발점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미국 국방부]]의 기록 중 베트남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고 기록한 것이 1955년 11월 1일이라 보통 베트남전의 시발점은 1955년으로 본다. 다만 미군이 투입된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1964년 [[통킹만 사건]] 이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등지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1960년대 말로 보는 시각도 많다.]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냉전]] 시기에 [[소련]]과 함께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군대가 [[남베트남]]에 파병되어 북베트남을 상대로 싸웠지만 졸전을 거듭하며 남베트남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조직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에 의해 고전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던 소련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제한적 작전을 행한 것도 있었지만 미국 군부의 부패 및 작전 수행 능력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세계 1위를 자신하던 미국의 군사력이 많은 의심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내 가족과 주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베트남의 문제를 베트남인들 스스로 해결하게 하라는 미국 내 [[반전]] 운동과 여론에 밀려 미군은 철수하게 되었고 1973년 미군의 베트남 철수 이후에 [[징병제/미국|미국의 징병제]]도 폐지되고 모병제로 바뀌었다. 예상 밖의 고초를 당한 미군의 군사적 명성은 크게 실추되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북베트남에 투항한 적이 없다. 그저 남베트남에서 철군한 것이다. 강화 협정의 내용도 교전 중지, 주월미군의 철수를 골자로 하는 것이다. 미군이 투항해서 북베트남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사죄한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그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건 북베트남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전쟁의 전략적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북베트남은 달성했으므로 북베트남의 승전, 미국의 패전이라 보는 것이다. 즉, '패배(패전)'이라는 용어의 오남용으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인데, 북베트남과 미국이 1:1로 전면전/열전을 벌인 후 미국이 패배했다는 개념이 아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개전 이유와 전쟁의 명분으로 인해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었으며 결국 버티지 못한 미국은 1973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과 파리 협정을 맺고 베트남에 주둔하던 주월미군들을 철군시켰다. 주월미군이 철수한 이후 베트남은 분쟁의 양상이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베트콩의 3파전으로 환원되지만 잦은 쿠데타와 부정부패, 민심의 이반으로 약화된 남베트남은 결국 1973년 미군이 철수한지 약 2년도 안되어 1975년에 패망한다. [[파일:external/cdn-images.9cloud.us/xwygv_128943460.jpg|width=600]] [youtube(sy4dDb3NmhY)] 덕분인지 서구권 등에서 나오는 창작물에서는 위 사진처럼 [[M16A1]]을 든 미군 병사가 [[UH-1]]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정글]] 속에서 [[베트콩]]과 싸우는 이미지로 대표되고 있으며[* 이후 모래색 전투복을 입고 [[M16 소총|M16A4]]를 든 미군 병사가 [[M2 브래들리]]에서 내리고 [[중동]]의 시가지에서 [[이슬람]] 병사와 싸우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걸프전]] 발발 전까지 '전쟁'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다.], 미군이 패배한 전쟁이라는 점 때문에 우울한 분위기와 전쟁에 회의적인 시각이 강한 편이다. 미국 국내에서는 [[히피]] 문화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보며[* 특히 이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참전 목적인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외신들이나 기자들에 의해 남베트남 정부의 부패와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고 이에 대해 부패하고 추악한 정부, 그것도 외국의 국가를 위해 우리의 친구, 형제들이 가서 싸워 죽는 게 이치에 합당한가?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으며 이를 부당하다고 여긴 당시의 젊은 세대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는 철부지들이란 반응을 보이면서 세대갈등도 일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참전 용사들의 [[PTSD|후유증과 사회 부적응 문제]] 등이 크게 대두되었다. [[대한민국 국군]]이 파병된 전쟁이기도 하다. [[6.25 전쟁]]에 이어 대한민국이 경험한 대규모 전쟁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전쟁/한국군]]을 참고할 것. 당시 [[대한민국]]에서 썼던 명칭은 '''월남전'''(越南戰)이며 지금도 [[대한민국 국군]]에서 만든 자료에서 월남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제2차 세계 대전]]처럼 명백한 악이었던 [[추축국]]이 존재하거나 [[6.25 전쟁]]과 같이 휴전 상태로 끝나버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선전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베트남 전쟁은 한쪽의 승리로 종결되었고 베트남은 이 전쟁 이후로 통일국가가 됐다. 그리고 지금 미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당시 연합군 측)과 베트남이 서로 이 일로 으르렁거리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지금은 알다시피 베트남과 미국, 한국 등도 수교를 맺고 원만한 외교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가령 현재 인기리에 판매중인 [[보잉]]제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베트남 국적기인 [[베트남 항공]]의 주력 기체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지정학적으로 미국 입장에선 베트남이 중국 견제를 위해 필요하고[* 현재 미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필리핀과 특히 경제적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는 베트남을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중국 견제를 위해[* 같은 사회주의권으로 분류되지만 [[중월전쟁]]까지 치르는 등 [[중월관계]]는 매우 좋지 않다.] 미국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나 남중국해 문제로 인한 중국의 소위 안하무인격 외교 행태로 인해 해당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군사력 증강에 적극 나서는 형편이다. 아울러 동남아시아 국가들간에도 앙숙인 경우가 많아 굳이 중국만이 이유가 아니어도 군사력 증상은 필요하다. 아울러 중국의 호전적인 정책으로 인해 대체 해외 생산지로 베트남이 각광받기 시작하는 부분도 한몫한다.] [[한국-베트남 관계]] 입장에선 경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외교 관계가 회복되면서 필요에 의해 옛 일은 어느 정도 덮고 넘어가는 단계인 것이다.[* 심지어는 북베트남을 계승한 현재의 베트남은 자국민들에게 베트남 전쟁에 대해 승전의 역사로 교육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상대적으로 대규모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루어졌던 파월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들에 대해서도 공론화를 피하며, 대한민국이 조사 및 사죄와 배상의 뜻을 우회적으로 타진했음에도 오히려 베트남 정부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게 현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